파주의 문화재

황정욱 묘 및 신도비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19호
지정연월일 :
2002년 7월 29일
소재지 :
탄현면 금승리 산 7
소유자 :
장수황씨 종중
조성시기 :
1607년(선조 40)
규모 :
재료 :

문화재 설명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황희의 후손인 황정욱黃廷彧(1532~1607)의 묘와 신도비이다. 황정욱의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경문景文, 호는 지천芝川이다.

황정욱은 명종 7년(1552) 사마시에 합격하고 155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진주목사, 충청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1584년에는 명나라에 가서 여러 왕 대에 걸쳐 명의 문헌에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가 이인임李仁任으로 잘못 기재된 문제宗系辨誣를 해결하고 돌아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자 순화군順和君과 함께 관동으로 피신했으나 왕자와 함께 왜군의 포로가 되어 안변의 토굴에 감금되었다. 이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로는 선조에게 보내는 항복 권유문을 쓰도록 강요했는데,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그의 손자와 왕자를 죽이겠다는 위협에 아들 혁赫이 대신 썼다. 이후 항복 권유문이 문제가 되어 길주에 유배되었으며, 1597년 왕의 특명으로 석방되었으나 곧 세상을 떴다.

황정욱의 묘는 정경부인 순창조씨와의 합장묘로, 묘비, 상석, 향로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신도비는 묘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곳의 비각에 있는데, 높이 3m, 폭 1m의 규모로 홍서봉이 글을 짓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