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의 문화재

성혼선생 묘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제59호
지정연월일 :
1981년 4월 17일
소재지 :
파주읍 향양리 산 8-1
소유자 :
창녕성씨 종중
조성시기 :
조선 중기 선조 31년(1598)
규모 :
재료 :

문화재 설명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인 성혼成渾(1535∼1598)의 묘이다. 성혼의 자는 호원浩源, 호는 우계牛溪·묵암默庵, 시호는 문간文簡,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1535년 한양에서 태어났으며, 다섯 살에 파산坡山 우계로 이사하면서 파주에서 자랐다.
성혼은 명종 5년(1551) 초시에 급제했으나 더 이상 과거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 전념했으며, 백인걸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고 같은 고을에 사는 이이와 사귀게 되면서 평생의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학문 성향에서는 이황을 지지하여 이이와는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성혼은 젊어서부터 이미 덕망과 학문으로 인정받아 여러 번 관직이 주어졌으나 모두 거절하다가 이이의 권유로 이조참판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에는 세자의 특별한 부름에 따라 우참찬右參贊을 거쳐 좌참찬左參贊*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영의정 유성룡柳成龍과 함께 일본과의 화의를 주장하다가 선조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고향인 파주로 돌아가 학문에 전념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후에 좌의정左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
묘역은 반달 모양의 사성莎城*으로 둘러져 있고 봉분을 바라보고 오른쪽에 묘비가 세워져 있으며 정면에 상석과 향로석, 좌우에 문인석을 배치했다. 묘비는 인조 27년(1649) 김집이 글을 짓고 윤순거가 글씨를 써서 세운 것이며, 묘소 입구에 있는 신도비는 김상헌이 글을 짓고 김집이 글씨, 그리고 김상용이 머리글篆額을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