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의 역사

파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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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문향 파주에서

통일 조국을 열어가는 통일한국의 중심도시로 발전해나가는 파주!

삼국시대의 파주의 연혁은?

475년 고구려 장수왕63년 처음으로 술이홀현이라 칭함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 봉성현으로 개칭

고대국가 시기의 파주는

우리고장 파주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증보문헌비고'라는 책에 나타나는데 본래 고조선의 땅이었다가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했다.
삼국시대에 최초로 파주를 차지한 것은 백제였으나 고구려와의 계속된 영토싸움으로 475년에는 파주 땅 자체가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그 뒤 신라 진흥왕 때 고구려를 몰아내고 신라가 차지했으며 삼국통일 과정에서 파주는 고구려와 신라가 서로 싸우는 각축장이 되었다.

고려시대의 파주의 연혁은?

1174년 고려 명종4년 서원현으로 개칭

고려시대의 파주는

고려 태조 왕건은 936년 후삼국을 통일하고 각 지역이 주·부·군·현(州府郡縣)으로 지명을 고치는데 이 때 적성지역을 적성현이라 불렀다.
그 뒤 장단. 적성. 파평 지역이 개성부 관할의 기현에 속하게 된다. 1018년(현종 9)에 들어 파주지역은 경기(京畿)에 속하는데 본래
경(京)은 천자(天子)가 도읍한 경사(京師)를 뜻하고 기(畿)는 천자의 거주지인 왕성을 중심으로 사방 500리 이내의 땅을 의미했다.

이후 파주지역은 무신정변과 깊은 관련을 맺게 되는데 1170년(의종 24) 정중부를 비롯한 무신들이 반란을일으켜 보현원이 바로
장단지역이었기 때문이다. 1174년(명종 4)에는 장단지역에 궁궐조성관을 두어 새 궁궐을 지을 준비를 시작하여 1217년 (고종 4)에
당시 장단현의 백악에 궁궐조성이 완성되었다.

조선시대의 파주의 연혁은?

1393년 조선태조 2년 서원군으로 승격

1398년 조선태조 7년 파평현 병합 원평군으로 개칭

1414년 조선태동 14년 교하현을 원평군에 병합

1415년 조선태종 15년 원평군이 도후보로 승격

1418년 조선태종 18년 교하현 독립 원평군으로 격하, 주민진정으로 도호부 재승격

1459년 세조 5년 파주목으로 개편

조선시대의 파주는

조선시대 파주는 모두 5개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즉, 교하, 파평, 파주, 적성, 장단지역이 그것인데 1398년에 파평현과
서원현(파주지역)이 합해 원평군이 되었다. 1414년에는 중앙관제와 지방군현제의 대대적 개편에 따라 교하현이 원평군에 소속되고
장단현은 임단현이 되었다.

이듬해 1415년에 인구 1,000호를 넘어선 원평군이 원평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1459년(세조 5) 원평도호부가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의
내향이라는 이유로 목(牧)으로 승격되고 파주로 고치게 되었다. 바로 이때 파주라는 지명이 처음 만들어졌던 것이다.

근대이후 파주의 연혁은?

1985년 고종 32년 파주목이 파주군으로 됨

1914.03.01. 교하군을 파주군에 편입(10면)

1945.11.03. 연천군 적성면, 남면을 편입(12면)

1946.02.05. 남면을 양주군으로 이관(11면)

1972.12.28. 장단군 장단면, 군내면, 진동면, 진서며을 편입(15면)

1973.07.01. 아동면이 금촌읍, 임진면이 문산읍으로 승격(2읍 13면)

1979.05.01. 군내면에 출장소 개설

1980.12.01. 주내면을 파주읍으로 승격(3읍 12면)

1983.02.15. 양주군 백석면 기산리, 영장리를 광탄면에 편입하고 영장출장소 개설

1987.01.01. 광탄면 기산리 일부(기산1리)가 양주군 백석면에 편입

1989.04.01. 천현면을 법원읍으로 승격(4읍 11면)

1996.03.01. 파주군에서 파주시로 승격

1996.03.01. 금촌읍이 금촌1동, 금촌2동으로 분동(3읍 11면 2동)

2002.04.01. 교하면이 교하읍, 조리면이 조리읍으로 승격 (5읍 9면 2동)

2011.05.01. 군내출장소를 장단출장소로 명칭변경

2011.07.25. 교하읍이 교하동, 운정 1, 2, 3동으로 분동, 금촌 3동 신설

2023.01.01. 운정1~3동과 교하동을 운정1, 2, 3, 4, 5, 6동과 교하동으로 분동(4읍 9면 10동)

근·현대의 파주는

일제시대인 1912년 당시 파주의 행정구역은 크게 4개 군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즉 교하군, 파주군, 장단군, 적성군인데 1914년 대대적인
행정구역 통폐합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적성군이 연천군에 흡수 되었고 교하군 전역이 파주군에 폐합 되었으며 또한
양주군·고양군·적성군의 일부가 파주군에 편입되어 주내·월롱·천현·광탄·조리·임진·파평·와석·청석·아동 11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이후 1945년 해방 후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분단되자 종래 연천군 관할이던 적성면과 남면이 파주군에 편입 되었고 이듬해 남면이
양주군에 편입 되었다. 1963년에는 장단군 군내면에 속했던 백연리·정자리·조산리·읍내리·송산리·공덕리·방축리·방목리가 임진면에 편입되었다.

1972년에는 장단군의 장단면·군내면·진서면·진동면이 파주군으로 편입 되었다. 1973년에는 아동면이 금촌읍으로 임진면이 문산읍으로 승격되어 2읍 9면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1980년에 주내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3년 다시 주내읍이 파주읍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89년에는 천현면이 법원읍으로 승격 하였다. 1996년에 파주군은 도농복합의 파주시로 승격하였으며 2002년 조리면과 교하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5읍 4면 2동 1출장소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고 2011년 교하동, 운정 1,2,3 동으로 분동, 금촌 3동 신설되어 4읍 3면. 7동. 1출장소의 체제를 갖추었다. 2023년 1월 운정 1, 2, 3, 4, 5, 6동과 교하동으로 분동해 4읍 9면 10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