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의 문화재

정태진 묘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15호
지정연월일 :
2001년 12월 21일
소재지 :
광탄면 영장리 8
소유자 :
정해동
조성시기 :
1952년
규모 :
재료 :

문화재 설명

한글학자이며 독립운동가 정태진丁泰鎭(1903~1952)의 묘이다. 정태진은 파주 금능리에서 아버지 정규원과 어머니 죽산 박씨 사이에서 삼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정태진은 연희전문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1925년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 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그러다 1927년 미국으로 유학하여 5년 동안 철학과 교육학을 전공하고 1931년 영생여고에 복직하여 1941년까지 11년간 근무했다. 그런데 함흥 영생여고보가 조선어학회 사건의 배경이 되었다. 1942년 이 학교 학생의 일기장에서 발견된 정태진의 한글 교육이 이 사건의 단초가 된 것이다. 당시 일제는 한글의 사용을 금지했는데 정태진은 학생들에게 한글을 사용하도록 했다.

1941년 영생여고보를 떠나 서울에 올라온 정태진은 『조선말 큰사전』을 편찬하고 있는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원으로 자원 봉사하다가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의 중심인물로 구금되어 함흥 감옥에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때 일본 경찰은 그간 써 왔던 사전 원고를 압수한 후 조선어학회를 해산시켜 버렸다.

1945년 광복 후 정태진은 다시 『조선말 큰사전』 편찬을 시작하는 한편, 연희대·중앙대 등에서 국어학 강의를 했다. 『조선말 큰사전』 3권이 간행되었을 때 한국전쟁이 일어나 사전 편찬이 잠시 중단되었으나 1952년 미국 록펠러 재단의 지원으로 『조선말 큰사전』 4권에서 6권까지의 원고 작업을 끝낸 정태진은 1952년 11월 고향을 다녀오던 중 교통사고로 『조선말 큰사전』 완간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한평생 우리말 보존을 위해 몸 바쳐온 정태진은 『조선고어방언사전』과 『한자 안 쓰기 문제』 등 저서 8권과 10여 편의 논문을 남겼다. 한글 발전에 크게 공헌한 정태진은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받았다.